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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기 시대의 부산

신석기 시대의 부산

신석기 시대의 부산
신석기 시대의 부산

지금으로부터 6천 년 전 된 이야기, 대략 1만 년 전 이야기됩니다. 이 지도를 조금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구의 변화를 조금 이해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지구는 간빙기, 빙하기, 간빙기, 빙하기를 거치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간빙기 시대인데, 이 지도는 인류 지구 상으로 말씀드립니다. 마지막 빙하기가 뷔름(Wurm) 빙하기입니다. 바로 뷔름 빙하기 이후에 한반도 주변의 모습입니다. 지금 대체적으로 이 지도상으로 보면 저쪽에 보면 이 지도가 되겠습니다. 이 지도는 1만 5천 년 전 지도로 추정하고 있고, 이 지도는 1만 년 전 시기, 이 두 개 지도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6천 년 전 지도인데, 여기 지금 여러분들이 지도를 자세히 보시죠. 보시면 흰 부분이 육지입니다. 육지이고 그다음에 조금 다른 색깔로 표시한 것이 바다죠. 바다인데, 여러분들이 주목하셔야 될 부분이 한반도에 지금 우리 부산이 있는 지역이 일본이 맞닿아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예 편의를 위해서 오늘날 지도를 이렇게 첨부했습니다만, 이것을 제외하고 보면 부산인지 일본인지 구분이 안 가죠. 그다음에 충적세 말기죠. 충적세 아니구나, 홍적세 중기·말기입니다. 여기 보시면 조금 지형의 변화가 보이죠. 이쪽 지형과 이쪽 지형의 변화가 조금 보이실 겁니다. 그다음에 여기 밑에 하단 부분 지도를 보시면 특이한 모습이죠. 여기 보시면 위에 있는 지도와는 완전히 다르죠.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동해안 지역이 호수에 가까울 정도로 표시가 되어있습니다. 이렇게 점차적으로 대륙이 바뀌었다가 지금으로부터 6천 년 전 경, 1만 년 전 전후쯤입니다. 그래서 이 정도 시기가 신석기시대이다 이렇게 보시면 되겠습니다. 그렇다면 이 지도 정도의 시대는 구석기시대로 말씀을 드릴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구석기시대는 무리를 지어서 이동하기 때문에 특이한 경제라고 그랬죠. 수렵, 어로, 채집 경제를 한다고 그랬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부산에 있던 구석기인들이 먹이를 또는 식량을 구하기 위해서 이렇게 제가 손을 비추고 있는 일본으로 이동해 갈 수도 있고, 부산에 있다가 남중국 쪽으로 갈 수도 있고 또는 북쪽으로 올라갈 수도 있죠. 그런데 이제 신석기시대가 도래하는 6천 년 전쯤 되면 이렇게 되니까 어떻습니까? 일본은 완전히 단절이 되어 버린 이런 모습입니다. 그러면 여기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우리가 다른 쪽에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것은 제가 아까 설명드린 내용입니다. 중요한 것은 뷔름 빙하기가 끝나고 난 6천 년 전후에 지금 북위 35도 온대지방에 해당되고, 여러분 잘 아시죠? 사계절이 아주 뚜렷한 모습을 보이게 된다고 이렇게 설명을 드릴 수 있겠습니다.

신석기시대의 한반도 식생활

그러면 신석기시대의 우리 한반도 전체의 식생활 환경이 어땠느냐, 이것을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사계절이 뚜렷해졌죠? 그래서 사계절이 뚜렷합니다만, 여러분 어떻습니까? 우리는 봄에 씨앗을 뿌리고 여름에 잘 키워서 가을에 곡식을 거두죠. 그래서 가을에 곡식을 걷을 때쯤 되면 큰 잔치를 하죠. 서양식으로 하면 추수감사절이라고 이야기하는데, 8월 한가위, 또는 추석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러면 여기서 잘 아셔야 합니다. 봄에 씨앗을 뿌리고 나서 가을걷이를 할 때까지는 사실상 먹을 것이 부족합니다. 그렇죠. 그다음에 또 우리 한반도의 특징이 여름이 무덥습니다. 그러다 보니 여름에 산림이 아주 무성해집니다. 산림이 무성해져서 시원한 부분도 있습니다만, 일반적으로 봤을 때 토끼라든지 사슴이라든지 사냥이 어려워지죠. 식량은 생산되려면 가을까지 기다려야 되고, 여름에는 숲이 우거져서 사냥하기 힘들고, 그러니까 어떻습니까? 먹고살기가 사실 힘듭니다. 이것을 해결해야 되겠죠. 그렇다고 지금처럼 패스트푸드가 있는 것도 아니고 또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식빵이 있는 시대도 아니죠. 그러면 결국에는 신석기시대에 사람들이 안정적으로 먹거리를 확보를 해야 합니다. 그러면 이런 먹거리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곳이 어디냐, 바로 해양 식료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해양 식료는 굴, 조개 이런 것들이 되겠습니다. 아무튼 그것을 적극적을 이용하게 되고, 또 신석기시대의 특징은 간석기가 유행하게 됩니다. 간석기가 유행을 하게 되고, 그다음에 도끼가 발달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이 있는데 그것과 연관해서 좀 더 다른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여기 보시면 석기인데, 신석기시대 석기는 아닙니다. 구석기시대 석기인데, 제가 여러분에게 보여 드리냐면, 여기 보시면 석기가 외부에 충격을 받아서 가공이 돼있죠. 여기 쓰이는 곳이 찍는 곳, 자르는 곳 이런 구석기시대 대표적인 석기입니다. 이걸 깬 석기라고 합니다. 깬 흔적이 있죠. 이쪽에 보시면 창과 같은 도구입니다. 끝에다 자루를 달아서 찌르는 건데, 이것도 외부에 흔적에 의해서 가공된 모습이죠. 네 개가 다 그러는데, 이 석기에다 큰 바위에다 저런 면들을 오랫동안 문지릅니다. 문지르면 어떻습니까? 끝이 아주 매끄럽겠죠. 간다, 그래서 간석기거든요. 그래서 이것은 구석기시대의 석기인 깬 석기라고 하고, 이 상태에서 사용되는 면들을 매끄럽게 간다 해서 간석기라 그러죠. 그래서 구석기시대는 뗀석기라고 하고, 신석기시대 석기는 간석기라고 합니다. 한자로 말하면 타제석기, 마제석기 이렇게 얘기합니다.

석기의 변화

이 석기의 변화를 말씀을 드렸고, 그다음에 신석기시대의 생활 모습을 유추를 해야 합니다. 유추를 하려면 문헌 기록이 있느냐, 아니죠. 문헌 기록은 없습니다. 그래서 신석기시대의 생활 모습을 잘 보여주는 것이 뭐냐면 바로 여러분들이 보시게 되는 조개더미라는 겁니다. 우리 한글로 조개더미라고 하고, 한자로 쓰면 패총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여러분들이 화면상 보시는 단면도가 바로 부산 동삼동 패총의 유적지를 발견하고 난 모습을 그대로 복원한 모습입니다. 조금 제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이 부분에 대해서 좀 더 설명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초기 신석기인들은 농경에 의존할 수는 없었습니다. 아까 제가 앞서 강의를 할 때 신석기시대에 가면 초보적인 농경을 시작한다고 그러거든요. 이 얘기는 뭐냐면 여러분들 어떻습니까. 농사짓는 농경하는 게 기술이라는 것이, 노하우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축적되는 것이 아니죠. 오랜 시간 동안 경험에 의해서 축적이 됩니다. 그러니까 지금 여러분들이 알고 계시는 쌀농사라든지 또는 밭농사 이런 것들이 신석기시대 사람들도 지금과 같이 한건 아니죠. 수 만년 동안 시행착오와 경험에 의해서 보다 좋은 농사기법으로 발전한 겁니다. 그래서 초기 신석기인들은 아마도 아주 극히 초보적인 농경을 했을 겁니다. 그러면 먹고사는데 힘들죠.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구석기시대 생활방식을 가져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재배라는지, 식물을 재배한다든지 또는 여러 가지를 재배하는, 곡물을 재배하는 모습이라든지, 가축을 사육하는 이런 것들은 아주 초보적이고 소규모로 행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신석기 초기에는 수렵, 어로, 채집을 통한 경제행위를 하는 한편, 초보적 농경을 하였을 것으로 추정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추정이 가능한 근거가 무엇이냐, 그것은 바로 여러분들 이것을 한번 보시죠. 구석기시대 패총, 조개더미에서 발견된 유물들입니다.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게 아니고 부산 동삼동에 신석기시대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을 발굴을 해보니 이런 전복껍데기, 조개껍데기, 각종 동물의 뼈, 이런 것들이 나오기 시작하죠. 그래서 유추가 가능합니다. 그래서 인류는 식료를 채집해서 전복이라든지 조개죠. 이런 것들을 먹고 처음에는 아무 데다 버렸겠죠. 처음에는 아무 데나 버렸는데 사람이 다니다 보니까 다치고 하니까 자기들끼리 이것을 어느 특정한 지역이 모으자 해서 이런 것들을 모으게 되는 거죠. 그게 바로 패총, 조개더미가 됩니다. 그래서 이런 조개더미에서 검출된 다양한 내용물들을 통해서 당시의 문화와 또는 자연환경, 이런 것들을 연구하고 신석기시대 사람들의 생활을 복원하는 거죠. 그 조개더미 안에서 발견되는 것이 조개껍질, 동물 뼈, 물고기 뼈, 토기, 석기, 골각기 이런 것들이 발견이 되기 시작합니다. 그렇다면 조개더미에서 발견된 유물들을 통해서 우리가 신석기시대의 이야기를 조금 더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신석기시대의 이야기

신석기시대 사람들은 조개, 해산물을 채집하기 위해서 바다로 나가야 되겠죠. 그래서 중요한 점은 바다라든지 해안가 그런 것들이 가까워야 됩니다. 그다음에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수렵, 어로, 채집을 계속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밤, 도토리 이런 것들도 채취를 해와야 하거든요. 그래서 열매의 채취, 그리고 각종 초보적이지만 어로 행위를 통해서 식량을 조달을 하게 된다. 여기 또 한 가지 고민해야 합니다. 신석기시대에 오면 이런 것들을 조리해서 그냥 먹을 수가 없죠. 가공을 해야 합니다, 가공을 해야 하는데 가공한 흔적을 잘 보여주는 것이 뭐냐면 바로 토기입니다. 토기. 그래서 토기를 통해서 새로운 요리를 하거나 아니면 각종 곡물들을 저장하고 또는 어떤 다른 쪽으로 활용을 하게 됩니다. 부산에서 발견되는 신석기시대 토기의 특징은 융기문 토기가 발견되고 있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이것은 뒤에서 제가 간단하게 다시 정리를 해드리겠습니다. 그래서 신석기시대 사람들은 밤, 도토리와 같은 열매 그리고 채집, 어로, 수렵을 통해서 주 식료를 얻었다 이렇게 보시면 되고, 주거지 옆에 농사하는 비상식량으로 아마 하지 않았느냐 이렇게 추정이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신석기시대 사람들이 먹었던, 활용했던 유물들을 한번 보죠. 전복 껍데기, 조개껍데기, 동물 뼈는 보셨고, 이게 그 시대에 사용했던 토기입니다. 토기이고 이것은 무문토기입니다. 융기문 토기와 무문토기는 다르거든요. 이것은 무문토기이고, 이것은 손잡이가 달린 토기이죠. 양쪽에서 손을 잡고 농사를 지었거나 아니면 아까 말씀드렸죠. 여기에 저장을 하게 되는 이런 모습이고. 이것은 신석기시대 사람들이 신앙 내지는 놀이를 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물들입니다. 조개 팔찌이죠. 조개를 가공해서 사람 손에 껴서 하는데, 이걸 무당이 찼다는 이야기도 있고 또는 놀이문화라고 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확한 것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이런 것들도 발견되었고, 그다음에 결합식 낚싯바늘이죠. 이것은 우리 부산지역 하고 강릉 주로 동해안 지역의 신석기 유적에서 발견되는 것인데, 이게 낚싯바늘입니다. 이렇게 해서 노루 뼈, 사슴 뼈로 만들었다고 이야기합니다. 만나는 지점에 칡넝쿨이라든지 다른 걸로 칭칭 감아서 당시 바늘로 썼다 이렇게 보시면 되겠습니다. 이런 것들은 부산 동삼동 패총전시관에 전시된 유물들입니다. 여러분들이 보고 계시는 동영상입니다. 이게 부산 영도에 있는 동삼동 패총 전경입니다. 여기 여러분들이 정지 화면에서 보시면, 이쪽이 바로 신석기시대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들, 바로 이 자리가 패총이 있었던 자리입니다. 그리고 여기 보시면 바로 바닷가죠. 그러니까 제가 수렵을 해서 또는 어로 행위를 한다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조개라는 것이라든지 물고기 이런 것들을 여기서 채집을 해서 또는 잡아서 자기 주거지에 가서 먹고 패총에다가 버렸겠죠. 이 인근에 아마 살았던 흔적들이 많이 있을 겁니다. 지금은 도시화가 진행돼서 많이 훼손이 된 상태입니다. 그런데 동삼동 패총의 여러 패총을 조사를 해봤는데,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그래서 부산지역의 조개더미를 제가 종합해서 설명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부산의 조개더미, 패총은 대체적으로 영도 동삼동, 강서구 녹산동 사이에 집중적으로 분포합니다. 그런데 동삼동 조개더미는 층위 가 다섯 개입니다. 즉 다시 말씀드리면 맨 아래층과 두 번째 층, 또는 두 번째 층과 세 번째 층, 세 번째 층과 네 번째 층, 네 번째 층과 다섯 번째 층마다 유물이 다르고 사용한 토기들이 다릅니다. 그래서 크게 다섯 시기로 구분이 가능하다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각 층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방사선 탄소 연대측정을 해보았습니다. 이것은 우리나라 고고학, 전 세계 고고학에서 시대를 측정하는데 이런 측정법을 많이 씁니다. 이걸 가지고 해 보니까 제일 하층, 제일 1층에는 지금으로부터 5천 년 전의 시기에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었습니다. 그리고 제일 위에 5층에 있는, 상층부에는 4천 년 전에 사용했던 유물들이 나왔다는 거죠. 그렇다면 아까 여러분들이 보셨던 동삼동 패총은 4천 년 동안 축적된 신석기시대 사람들의 흔적이었다 이렇게 보시면 되겠습니다. 그래서 동삼동 패총은 가장 오래된 유적지로서 부산지역의 지금으로부터 기원전 5천 년 전에 인류가 정착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지다 이렇게 설명을 드릴 수 있겠습니다. 여기는 우리나라 전체적인 신석기 유적의 분포도입니다. 부산 낙동강 하구 나오죠, 영산강, 한강, 대동강, 압록강 이렇게 많이 분포되어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가지고 종합을 해야 합니다. 아까 제가 다섯 개 층위를 가지고 설명을 드릴 건데, 일단 먼저 몇 가지 전제를 하겠습니다. 부산은 지금으로부터 기원전 3천 년 전부터 2천 년 전 사이가 가장 전성기였다. 왜? 그것은 아까 다섯 개 층위의 내용을 조사해보니까 기원전 3천 년부터 2천 년 사이가 가장 왕성한 활동을 했더라는 겁니다. 근데 특이한 점은 기원전 2천 년 전 이후부터는 유적지도 감소하고 내용도 빈약해진다는 거죠. 이 얘기가 뭐냐면 기원전 2천 년 전부터 동삼동 지역에는 사람들이 많이 살지 않았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생각해야 되느냐, 바로 생활환경이 좋은 인접지역으로 이전하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래서 BC 1500년에서 1000년 사이의 유적지를 보니까 동삼동, 녹산 등지에 있던 사람들이 소집단으로 분화해서 다른 집단으로 이전해 갔음을 보여준다 이렇게 보시면 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신석기시대의 생활상 또는 변화상을 잘 보여주는 것이 부산지역에 분포되어있는 조개더미이다 이렇게 보시면 되겠습니다. 그래서 부산지역의 조개더미의 분포양상을 종합해보면 해안이나 낙동강 하구였다는 점. 그다음에 해수와 담수가 만나는 즉, 자원이 풍부하고 또는 정착생활을 하기 좋은 조건에 많이 분포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런 것들을 종합해 보니까 부산은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신석기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죠. 이걸 좀 넓은 의미로 말씀을 드리면 동삼동 유적지에 있는 신석기인들을 통해서 봤을 때 우리 한민족의 형성에 기틀을 마련한 사람들이다. 이렇게 보시면 되겠습니다. 밑에 두 개 사진은 동삼동 패총 초창기에 발굴의 모습들입니다. 지금 하고 많이 다릅니다만, 지금 보통 이렇게 발굴하고 나면 다시 덮죠, 덮어서 다시 보존을 합니다. 그러면 제가 아까 동삼동 패총이 다섯 개 층위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부산지역을 종합적으로 한번 도표를 만들어 봤습니다. 이것은 우리나라 전역을 대상으로 한 것은 아닙니다. 부산만 대상으로 한 거거든요. 그래서 다른 지역의 시대 편년 하고는 조금 다릅니다. 근데 부산의 특징적인 걸 볼 수 있죠. 동삼동 일 지구에는 기원전 5천 년부터 BC 천년까지 무려 4천 년의 유적이 지금 다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 지구에는 말기 부분만 남아있죠, 바로 이 부분입니다. 그리고 아치섬, 바로 지금 동삼동 패총에서 조도라고 그러죠. 한국 해양대학이 있는 거기에서 발견된 패총은 대략 3천7백 년 전부터 됐고, 영선동은 4천5백 년 전부터 이렇게 해서 왔는데 2천 년쯤 가니까 없어지더라는 거죠. 이런 어떤 특징들이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아까 제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렸죠. 천년에서 2천 년 전후 시기가 가장 전성기였다. 여기 보시면 중기와 후기, 중기와 후기의 어떤 이런 부분들에 부산에 이렇게 패총들이 많이 분포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것들을 제가 통해서 앞서 설명을 드렸습니다.

패총 전시관

여러분들 시간이 나시면 여기 가시면 제가 지금 설명드렸던 이런 내용들을 잘 엿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패총 전시관에 전시된 유물의 내용, 그리고 아까 시대 편년을 통해서 부산지역이 신석기시대의 보고였다. 즉,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신석기 유적을 통해서 봤을 때, 부산입니다. 부산의 신석기 유적지 특히 패총의 내용을 봤을 때 우리 한민족을 형성하는 데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토대가 된 지역이었다 이렇게 설명을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제가 여러분들에게 세 번째 강의 주제의 내용을 요약해 드리면, 부산은 신석기시대에 매우 중요한 역사적 사실을 가지고 있다. 즉, 다시 말씀드리면 우리나라에서 한반도에 최초로 정착한 인류가 어디에 정착했느냐? 바로 지금 여러분들이 보고 계시는 화면에 있는 동삼동 패총전시관 인근에 정착을 하게 되고, 정착한 집단이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또 다른 부분으로 분화되어 나가는. 그래서 즉 한민족의 형성이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렇게 보시면 되겠습니다. 그래서 부산의 신석기는 우리나라 한반도의 한민족의 정착과 매우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설명을 드릴 수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