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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지명 이야기

부산의 지명 이야기

부산의 지명 이야기
부산의 지명 이야기

부산의 지명 이야기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부산의 지명 이야기는 지리지를 통해서 저희들이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보고 계시는 <삼국사기>는 고려 인종 23년에 편찬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현존하는 지리지가 가장 오래된 것이 <삼국사기>입니다만, 기록으로 보면 <삼국사기> 이전에도 기록이 있었던 걸로 보입니다. 근데 현존하는 기록물들이 없기 때문에 <삼국사기>로부터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삼국사기> 안에 우리 부산은 어떻게 기록이 되어있느냐? 이것을 먼저 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보고 계시죠? <삼국사기> 권 34, 지리지 1, 양주 쪽에 이런 내용들이 있습니다. 제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동래군, 본거 칠산군 경덕왕 개명 금인지. 영현이 동평현 본 대증현 경덕왕 개명 금인지. 기장현 본갑화량곡현 경덕왕 개명 금인지. 이 이야기는 뭐냐면 <삼국사기>에 부산이 이렇게 편재가 돼있다고 하는 겁니다. 즉, 부산이라고 하는 이름이 아니고 여기 보시다시피 동래군이죠. 동래군인데, 동래군 아래에 영현이 두 개가 있다. 동평현이 있고 기장현이 있다는 거죠. 그것은 조금 있다가 다시 제가 설명드릴 것이고, 이 한문 사료를 번역해드리겠습니다. 동래군은 본래 거칠산군이다. 경덕왕 때 이름을 바꾸어서 지금까지 이어온다. 영현은 두 개인데 동평현은 본래 대정현이다. 경덕왕 때 이름을 바꿔 지금에 이르렀다. 기장군은 본래 갑 화랑곡현인데, 경덕왕 때 이름을 바꿨다. 지금에 이르렀다. 그래서 지금 여러분들이 단순하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삼국사기에서 부산

<삼국사기>에 기록된 부산의 모습은 이름이 동래군이었고, 그 동래군 안에 두 개의 영현이 있었다는 거죠. 그러니 동래군이 하나가 있고 그 안에 동평현과 기장현이 있었다. 이렇게 보시면 되겠습니다. 여기에도 부산의 이름은 나와 있지 않습니다. 다음 다른 사료를 제가 한번 또 보여드릴게요. 세종 7년에 만들어진 경상도지리지 내용을 조금 보도록 하겠습니다. 안에 내용이 어떻게 되어있느냐면,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동래현 고지 거칠산군, 신라 시 개 동래군, 고려 시 개 동래현, 본조인지. 동평현 고려 시 속 양주임 내 본조 태종 대세 재을 유 환속 현임 내 을축 부속 양산. 기장현 고려 시 별 치관 연대 미상. 여기에서 여러분들과 해석을 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기본적인 것만 제가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앞서 여러분들이 보셨던 <삼국사기>와 크게 내용이 다르지 않습니다. 동래현은 본래 옛날부터 거칠산군이었다. 신라 때에 동래군으로 고치고 고려 때에 동래현으로 고쳤다. 본조, 여기서 말하는 본조라는 것은 조선입니다. 조선에서 그대로 왔다. 이런 의미죠. 여기도 보시면 동래 현안에 동평현이 있고, 동평현 아래 기장현이 있죠. 기본적인 구도는 <삼국사기>와 거의 동일합니다. 그러면 다른 지리지를 한번 보도록 하죠. 세종 31년에 편찬된 고려사 기록에 지리지는 우리 부산이 어떻게 표기가 돼있느냐,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두 부분으로 구분되어있습니다. 고려사 권 57, 지리지 2, 울산에 부산 이야기가 실려 있고, 양주에 부산 이야기가 실려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시죠. 울주에 보시면 동래현, 본신 라거 칠산군 경덕왕 개위 동래군 현종구년래속부치현 금유 온천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동래현은 본래 신라 거칠산군이다. 경덕왕 때 동래군으로 고치고, 현종 9년에 다시 바뀌었다가 현이 되었다고 되어있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지금 온천이 있다는 뜻이죠. 이제 문제는 뭐냐면 울산 소속의 동래현이 돼있습니다. 여기도 양주로 보시면 양주는 지금 양산이거든요. 양산을 보시면 그 안에 동평현과 기장현이 있습니다. 이 이야기가 뭐냐면 본래 동래군 안에 동평현과 기장현이 있었는데, 고려시대 가면 동래현은 지금의 울산 소속으로 바뀌고, 동래현에 영현으로 있던 동평현과 기장현은 양산 소속이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부산이 하나의 행정단위에서 울산과 양산으로 구분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여전히 동래현과 동평현, 기장현이 유지되고 있다는 겁니다. 여기까지가 고려 시대의 부산의 지명 이야기입니다. 삼국시대부터 고려 시대까지 인데, 다음은 조선시대에 대한 이야기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세종실록 지리지입니다. 단종 2년에 편찬된 지리지입니다. 여기 보시면 동래현, 판 현사 일인 본거 칠산군. 경덕왕 개금명 이렇게 쭉 나오죠. 여기도 나오고 그다음에 또 보시면 여기도 특별한 게 별로 없습니다. 제가 지금 손으로 가리고 있습니다. 속현일 동평, 동평인 이유도 존재. 그다음에 맨 밑에 줄에 보시면 여깁니다. 기장현이 나오게 됩니다. 근데 전체적인 내용상으로는 지금까지 여러분들이 보셨던 내용하고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해야 될 사료가 있습니다.

주목해야 할 사료

좌도 수군 도안 무 처치사 본영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이게 좌군 수군이라고 하는 군사 직책입니다. 그렇게 해 놓고 괄호에 작은 글씨로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동평현 남쪽 7리 되는 부산포에 있다. 이 이야기가 뭐냐면 양주군 소속의 동래현에 좌도 수군 도안 무 처치사 본영이 있는데 본영이 어디 있느냐면 동평현의 남쪽 7리에 있는 부산포에 있다는 거죠. 여기서 부산포라고 하는 지명이 처음 등장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부산이라고 하는 지명은 이 지역을 대표하는 지명이 아니고, 동래현 소속의 동평이라고 하는 마을에 소속된 부산포라고 하는 겁니다. 포, 포구, 지금으로 치면 어촌마을이 되겠습니다. 여기 처음으로 부산포라고 하는 지명이 등장을 했다는 점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다음에 조선 중종 때 편찬된 신 증 동국여지승람을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여기도 거의 내용은 앞서 보았던 내용하고 거의 비슷합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에게 설명드리고 싶은 것이 신 증 동국여지승람에 산천조에 보면 이런 것이 나옵니다. 부산, 동평현에 있으며 산이 가마솥 모양과 같아서 이렇게 이름을 지었다. 그 아래가 바로 부산포인데 상주하는 왜인의 집들이 있으며, 북쪽으로 현까지의 거리는 21리다. 이런 기록입니다. 여기에서 부산이라는 지명이 등장을 하죠. 앞서 제가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렸던 경상도지리지에 나왔던 부산에 대한 부산포에 대한 얘기입니다. 동평현 소속이고 중요한 것은 산이 ‘가마솥 모양으로 생겼다’라고 이렇게 나오죠. 그런 이야기이고, 그 산 아래 부산포가 있었다고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여러분들 앞서 살펴보았던 자료와 지금 보시는 자료의 차이점이 하나 있습니다.

부산 지명 차이점

앞서 보았던 부산할 때 부 자는 부자 부(富)입니다. 부자 부(富) 자이고 지금에 여려 분들이 보시는 부자는 가마솥 부(釜) 자거든요. 한자 바로 이 한자입니다. 이런 차이점이 있는데 이 차이점은 발음의 차이점인지 아니면 어떤 특정한 부분을 지칭해서 그렇게 하는지는 현재 밝혀지지 않았습니다만은, 발음으로 하면 부산으로 등장을 한다는 거죠. 그래서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이야기는 부산이라고 하는 지명 이야기를 봤을 땐, 부산이라는 지명은 행정구역의 지명이 아니었다. 동래군 아래의 동평현에 있던 자그마한 포구, 포구였다는 거죠. 포구였는데 어떤 기능을 하느냐? 왜인들이 있다는 점입니다. 즉, 일본과의 교류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음을 짐작게 하는 내용들이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여러분에게 부산의 지명 이야기를 설명드렸는데 한 가지 매우 중요한 점이 부산이라고 하는 지명은 행정구역에 편재된 지명이 아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경상도 안에 동래군, 그 아래 동평현에 있던 포구의 이름이 부산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부산의 정체성을 우리가 보고자 할 때는 부산만 독자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동래현, 동평까지 우리가 같이 고려를 해야 된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