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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후 부산과 문학

해방 후 부산과 문학

해방 후 부산과 문학
해방 후 부산과 문학

현대소설 속에 부산의 모습을 살피신 여러분들은 이제 거의 마지막 여정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해방 후 부산의 모습인데요. 해방 후 부산의 모습이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격동의 세월이자 산업화되고 도시화되면서 지금의 모습으로 탈바꿈되는 그러한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여러분하고 가장 친숙할 것 같고 한편으로는 이것을 잘 이해하셔야지 부산이라는 곳이 갖고 있는 이미지가 문학 속에 어떻게 녹아있는지를 우리가 체험하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해방 후 부산에 대해서 먼저 살펴봐야 되는 내용은 간략하게 다섯 가지 정도입니다. 해방 후 부산의 모습은 부산항을 중심으로 도약을 꿈꾸는 시기였다는 것. 한편으로는 도약을 꿈꾸는 시기가 남북의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인한 혼란기로서 경험하게 된다는 것. 그리고 이런 지리적인 특징보다는 심각한 삶의 문제가 더 부각된다는 것. 한편 1950년 일어난 한국전쟁으로 인해서 도시 전체의 모습 그리고 삶의 형태의 엄청난 변화가 초래된다는 것. 그리고 그 전쟁으로 인한 혼란 그리고 그런 경험 또는 상흔을 우리 도시 전체가 공유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내용을 여기서 살펴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한국전쟁과 부산

한국전쟁은 부산의 산복도로 역사를 바꿔놓았습니다. 살 곳을 찾아 부산으로 몰려온 피난민들. 살기 힘든 험한 산비탈이나 바닷가 인근 바위라도 몸을 누일만한 장소면 어디든 가리지 않고 삶의 둥지를 틀었습니다. 깡통, 종이상자, 나무와 같이 쉽고 싸게 구할 수 있는 재료들로 집을 지었습니다. 어떠세요? 부산이라는 곳이 좀 남달리 느껴지지 않으십니까?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지금 현대의 부산이 이루어졌다고 보시면 됩니다. 같은 내용의 비슷한 것이지만 하나 더 영상을 만나시겠습니다. 전쟁의 후유증은 심각했습니다. 굶어 죽는 사람도, 구걸하는 사람도 많았죠. 돈 되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 하리라는 사람들로 넘쳐났습니다. 이때 피난민의 눈에 들어온 것이 국제시장이었습니다. 깡통, 집화, 군복, 양담배 등 미군 부대에서 몰래 빼내 온 군수품이 국제시장의 주요 상품이었습니다. 옷가지를 들고 파는 여인네들 모습은 국제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습니다. 단속을 피해 물건을 치마 속에 감추고 임신부 행사를 하며 내다 팔았죠. 이런 시기를 통해서 피난 온 황순원은 ‘곡예사’라는 소설을 발표하게 됩니다. 이 ‘곡예사’는 1952년에 발표한 소설인데요, 이 ‘곡예사’를 통해서 피난민들이 갖고 있는 아주 험난한 삶의 여정이 황순원 문학 속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한 집에 아주 많은 사람들이 정말 엉덩이 붙일 곳조차 없는 그런 좁은 공간에 살아갈 수밖에 없고, 그 공간에서 살면서도 어떻게 호구지책을 마련해야 될지 궁리하는 그런 가운데 하루하루가 삶과의 전쟁 또는 삶을 위한 투쟁이라는 것들을 잘 묘사해 내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어려움을 뚫고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풍요로움을 만들어 낸 것이죠. 그래서 그런 풍요로움 속에서는 단순하게 어떻게 보면 좋은 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풍요로운 이면, 풍요로움으로 가기 위한 이면의 고통 같은 것들이 문학 속에서 형상화되기도 됩니다.

광복동 다방 시

‘광복동 다방’이라는 시는 그러한 슬픔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학은 기쁨만을 주는 것이 아니라 슬픔을 통해서도 우리를 정화시키고 우리를 한편으로는 죽음의 유혹으로부터 강인하게 만들어주어서 우리로 하여금 삶에 더 많은 공을 들일 수 있도록 배려하기도 합니다. 그런 문학의 정신 안에서 죽음 역시 삶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는 것인데요. 이 시는 바로 그러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전봉래의 ‘광복동 다방’이라는 시인데요. 여기에서 이 시는 자기가 죽어가는 상황 속에서도 어떻게 보면 한 자 한 자의 글을 통해서 시로 형상화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