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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 속에서의 부산 이미지

현대문학 속에서의 부산 이미지

현대문학 속에서의 부산 이미지
현대문학 속에서의 부산 이미지

신소설 다음은 현대문학 속에 나타난 부산의 이미지인데요. 사실 현대소설의 기점을 우리는 춘원 이광수의 ‘무정’으로부터 시작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무정’은 1917년에 발표된 장편소설인데, 그 이전까지를 어떻게 보면 개화기 소설 혹은 신소설이라고 부르고 그 이후의 소설을 현대소설이라고 부릅니다. 사실 부산의 이미지가 본격적으로 잘 드러난 것은 현대소설 속에서 나타난 이미지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이런 이미지를 통해서 부산이라는 것은 근대 이전을 넘어서서 일제강점기 그리고 한국전쟁, 산업화를 거치면서 지금 현대 이미지까지 올라오게 되는 과정을 겪게 됩니다. 이런 현대적인 이미지 안에서의 부산이 가장 적극적으로 처음에 많이 늘어난 소설. 염상섭의 ‘만세전’입니다. 사실 ‘만세전’이라는 소설 제목은 만세 운동 이전에 사회현상을 또는 사회를 묘사한 내용 때문에 ‘만세전’이라고 제목이 되어있는데요. 원래의 제목은 ‘무덤’이라고 해서 발표됐다고 합니다. 하지만 무덤이라는 내용이 갖고 있는 이미지 때문에 ‘만세전’이라고 제목을 바꾼 것인데, 이것은 1919년 3·1 운동 이전에 한국사회의 모습을 아주 잘 그려 내는 소설로 알려져 있습니다. 염상섭은 이 소설에서 일본에 가 있는 주인공이 자기의 아내가 위독하다는 전보를 받고 일본에서부터 출발해서 시모노세키를 거쳐 부산에 오고 김천, 영동, 대전을 거쳐 경성까지 가서 아내의 병간호를 하는데 결국은 아내가 목숨을 잃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공부를 마치기 위해서 동경으로 돌아가는 여로형, 여로형이라는 것은 여행하는 과정을 이미지화해서 소설 속에 나타낸 것이라고 이해하시면 될 것 같고요. 그 이야기를 통해서 주인공은 각 곳에 어떻게 보면 만세운동 이전의 우리 사회의 모습을 굉장히 소설로 잘 묘사하고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 ‘만세전’에서 드러나는 부산은 지금 제 바로 옆에 나와 있는 이와 같은 이미지로 되어있는데요, 이것은 관부연락선을 타고 부산항에 내린 주인공이 어떻게 보면 전차를 타기 위해서 걸어가는 과정 안에서 보이는 묘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그 뒤편에 있는 사진이 그 당시에 있었던 적산가옥 같은 것들을 나타내고 있는 것인데요. 이와 같이 항에서 내려서 전차를 타기까지, 전차가 영도 끝에까지, 영도다리 앞에까지 가 종점이었다고 하는데, 거기까지 걸어가면서 바라보는 것이 조선인은 아무도 없고 오로지 일본의 가옥만이 즐비한. 그리고 일본인지 조선인지 모르는 안타까운 심정 같은 것들을 소설로서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형상화는 염상섭에게 이 땅이 갖고 있는 이미지 같은 것들을 확연하게 깨우치게 만들어 주는데요. 그것은 우리가 백의민족으로 갖고 있는 고결하고 순수한 이미지가 아니라 이제는 닳고 닳은 옷, 다시 말하면 누렇고 더러운 흰 바지저고리를 입은 조선인 노동자밖에 안 되는. 그러한 것에서 자기는 한편으로는 마음이 놓이지만 한편으로는 그것밖에 안 되는 운명으로서의 조선을 즉시 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내용을 통해서 염상섭은 만세전이 갖고 있는 소설 안에서의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의 실상을 그려내고 있는데요. 총체적으로 우리나라가 무덤이고 구더기가 들끓는 무덤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것들을 깨우쳐 줍니다.

문학이 갖고 있는 효용

문학이 갖고 있는 효용이라면 이렇게 자기가 몸담고 있는 사회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인식하고 그것에서 더 나아가는 어떠한 이미지 같은 것들을 찾아내고 생각해 보게 하는 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만세전’은 아주 가치 있는 소설인데요. 그다음에 나오는 소설은 부산이 배출한 유명한 소설가이시죠. 요산 김정한 선생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산 선생은 실제로 범어사 근처에서 태어나신 걸로 알려져 있고요, 그리고 자기 친척 중에 한분이 범어사의 스님이었습니다. 그런 요산 선생에게 절이라는 곳은 일종의 놀이터이자 생활공간이었고, 한편으로는 과거가 살아 숨 쉬는 자기의 안식처 같은 느낌을 주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요산 선생의 작품 속에는 그런 까닭에 굉장히 많이 절이 나고오 스님이 나오고 또는 스님과 사람들의 대결구도 같은 것들을 묘사하고 그려지기도 합니다. 요산 김정한 선생은 그래서 부산에서 아주 각광받는 그러니까 부산 출신의 유명한 소설가이기 때문에 문학관도 건립돼있고, 생가도 보존해 놓고 있습니다. 요산 선생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1936년에 발표한 ‘사하촌’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사하촌’은 보광사라는 절과 성동리 소작인 사이의 갈등을 그려내고 있는 것인데요. 이 현대소설 안에서 이런 것들이 왜 의미가 있느냐 하면, 현대소설을 통해서 부산이라는 이미지가 그려냈을 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살고 있는 모습이 정말로 제대로 형상화되어 있기 때문에 당시의 모습을 우리가 상상하거나 또는 재구 하는 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자산이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동리 소작인들과 보광사의 사찰, 그러니까 절의 땅인 거죠. 절의 땅과는 물을 놓고 대립합니다. 근데 앞서 그림에서 보셨다시피 보광사의 땅은 초록색 짙게 벼들이 잘 자라고 작물들이 굉장히 풍성한 반면, 그렇지 않은 곳은 물이 귀해서 굉장히 메말라가고 가뭄이 심해서 극심한 고통을 받는 곳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선생은 이와 같은 소설의 구절을 통해서 형상화하고 있고 그 형상화를 통해서 당시의 실상을 우리에게 전달해 줍니다. 전달해주는 실상이 무엇이냐, 바로 물을 통해서 이와 같이 많은 사람들이 물을 하나에 의지해서 살아가고 있는데 그 물을 대하는 태도들이 다 다르다는 것이죠. 실제 문학이 갖고 있는 느낌은 무엇이냐고 얘기할 때 우리가 흔히 문학은 네 가지의 사람이 바라보는 죽음과 같다고 말을 많이 합니다. 그 네 가지의 사람이 바라보는 죽음이라는 것은 뭐냐 하면 아주 저명한 작가가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이 죽음을 맞이한 작가 옆에는 네 명의 사람이 섰는데 한 사람은 그의 아내고 또 한 사람은 죽음을 확인하러 온 의사고, 그리고 그것을 취재하러 온 신문기자고,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그곳을 저명 작가니까 그의 죽음을 예술로 형상화시키고 싶었던 화가였습니다. 이 네 명의 사람은 각각 그 죽음이 달리 인식됩니다. 아내는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남편의 죽음이니까 그 죽음 자체가 자기의 상처로 받아들이는 슬픔의 대상이고, 그것에 대해서 의사는 아내의 심정은 이해하지만 자기는 객관적으로 조금 더 떨어진 거리에서 죽음을 판단해야 되는 사람입니다. 그것에 비해서 신문기자는 더 한발 더 물러선 객관적인 것으로 자기는 저명한 사람의 죽음이 그다지 슬프지 않습니다. 다만 중요한 기사를 쓰고 싶은 마음속에서 여기 달려온 객관적인 글쓰기의 한 소재일 뿐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화가는 그 모든 곳에서 벗어난 그곳을 그림으로 남기고 싶어 하는 정말 먼 곳에 있는 대상인 거죠. 그때 우리가 글 쓰는 작가는 이 네 명의 입장중에서 어디에 놓여있느냐에 따라서 각각 글 쓰는 태도, 방향 또는 글의 색깔이 달라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사하촌’을 쓴 김정한 선생은 그런 면에서는 어쩌면 아내보다는 조금 멀지만 신문기자보다는 한참 가까운 의사의 입장에서 그 당시의 물이 갖고 있는 효용성을 이렇게 소설로 묘사해 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소설을 통해서 궁극적인 물음을 묻습니다. 그것이 뭐냐면 과연 이러한 물과 같은 보편적인 가치가 왜 사람들에 의해서 재 산화되고 자 산화되면서 고통을 줄까? 그리고 그런 것들이 어떻게 하면 해결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 빠지는 거죠. 그리고 그런 맥락 안에서 우리를 이해시킵니다.

해운대와 소설

지금 현재 부산 해운대구의 야경 사진인데요. 불야성이죠. 하지만 맨 처음에 해운대의 바닷가가 많이 묘사된 소설을 쓴 사람은 우리가 잘 아는 이태준 선생입니다. 1942년에 발표한 '석영'이라는 소설에서 해운대 바닷가는 어떻게 보면 소설가의 매헌이라는 사람이 새로운 여자인 타옥을 만나고, 타옥을 만나서 잠깐의 감정의 흔들림을 경험하는 곳으로서의 도피처. 그렇게 해운대가 묘사되는데요. 그 해운대 묘사되는 곳 안에서 어떻게 보면 쓸쓸한 바닷가 혹은 그냥 백사장으로서 해운대가 기능합니다. 근데 지금 해운대는 어마어마한 모습으로 탈바꿈돼가지고 우리를 어떻게 보면 부의 상징이자 한편으로는 쉼터, 그러니까 여름의 거의 천만 명 가까운 사람이 해운대를 방문해서 여름휴가를 보내는 것으로 볼 때 대표적인 휴양지로서의 느낌을 전해 주는 거죠. 근데 1942년만 해도 그렇지 않은 모습을 이태준은 소설 속에서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려낸 이태준 소설 안에서는 쓸쓸함이 감도는 곳, 그리고 그 쓸쓸함이 감도는 해운대의 파도소리는 어제와 다를 바 없는, 어떻게 보면 일상에서 우리로서 기능하는 것 밖에는 주인공에게 전달되지 않습니다. 그런 것들이 우리가 아는 현대소설 안에서의 부산의 이미지를 그려내는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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