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부산 정보, 부산 관광지, 부산의 역사

소재에 따른 시대구분과 가야의 철기문화

소재에 따른 시대구분과 가야의 철기문화

소재에 따른 시대구분과 가야의 철기문화
소재에 따른 시대구분과 가야의 철기문화

인류는 쭉 발전을 해왔습니다. 어떻게 보면 원숭이가 인류의 조상이다 이렇게 얘기합니다만은, 나무에서 떨어진, 나무를 잘 못 타는 원숭이가 어쩌면 땅에 내려와서 자기 몸을 지키기 위해서 도구를 사용하고 불을 사용함으로써 인류가 이렇게 발전을 해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유일하게 사용하는 것이 도구라는 거죠. 다른 동물들은 도구를 그렇게 사용할 줄은 모릅니다. 물론 몇몇 동물들에 한해서 도구를 사용하는 경우가 없지는 않지만 인간만큼 도구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그런 종족은 없죠. 그래서 도구를 가지고 우리가 이제 시대를 구분하는 것이 굉장히 일반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일입니다. 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 이렇게 나누게 되죠. 인간이 제일 먼저, 지금도 화가 나면 주변에 있는 돌을 집어 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만 이게 석기시대예요. 석기시대 그리고 청동기시대 그다음에 철기시대 이렇게 되는데, 기라는 말은 그릇 기(器)자 이기도 하지만 도구라는 뜻도 있습니다. 신석기, 청동기, 철기 그리고 이제 철기문화가 거의 삼국시대에 이루어진 문화이기 때문에 지금도 지속적으로 철기다 이렇게 볼 수 있겠습니다.

금속, 청동

석기, 돌, 칼, 그리고 청동기 동검 그리고 철기로 만든 각종 칼 같은 것들을 아래에 볼 수가 있습니다. 금속은 대체로 만드는 방법이 쇳물이죠. 쇳물이 될 수도 있고, 청동 물이 될 수도 있고, 용액을 만들어서 그걸 갖다 틀에다 붓습니다. 거푸집이라고 얘기하죠. 그다음에 그게 식혀서 굳게 되면 숫돌로 날을 세우고, 그걸 가지고 마무리 손질해서 가공품을 만듭니다. 그 사례로 우리가 청동을 예로 들 수 있는데, 청동의 원료는 구리입니다. 구리는 융점이 1083℃입니다. 근데 구리에다 주석을 15% 섞게 되면 청동이 됩니다. 청동은 말 그대로 푸른 동(銅) 이런 뜻이죠. 푸른 동(銅). 그래서 청동은 주석을 15% 섞은 것인데 그 모태가 되는 것이 구리입니다. 구리는 공작석이라는 돌을 불 위에서 넣게 되면 거기서 붉은 액체가 흘러나오고, 그게 바로 구리입니다. 그래서 구리에다 주석을 15% 섞게 되면 강도가 3배 증가하게 됩니다. 3배 증가했으면 단단해지는 거죠. 그래서 무기로 쓰기에 손색이 없는 그런 도구를 만드는 중요한 소재가 되는 거죠. 지금도 청동을 부분적으로 쓰고 있습니다. 예들 들어서 독립기념관 지붕에 청동이 덮여있기도 하고, 동상 같은 걸 보면 푸르스름하게 나오죠. 동상이라 청동이 많이 들어간 그러한 제품이 되는 겁니다. 여기 지금 동을 만들어서 그다음에 날을 세운, 그다음에 나무로 손잡이를 만든 제품 하나를 보여드리고 있습니다. 이건 청동입니다. 청동기시대 다음이 바로 철기시대입니다. 지금도 거의 철기시대다 이렇게 볼 수 있는데, 이 그림을 전공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선 '상태도'다, 상태를 나타낸 그림이다 이렇게 얘기합니다. 아까 구리의 융점은 1083℃라고 얘기했는데, 철의 융점은 1538℃나 됩니다. 1600℃ 정도의 높은 온도를 얻을 수 있어야 쇳물을 얻을 수가 있는 거죠. 그런데 여기에 뭔가가 들어가게 되면 융점이 쭉 떨어지게 됩니다. 어디까지? 1147℃까지 떨어지게 됩니다. 뭐가 어떻게 되면 1147℃가 되느냐면, 4. 3이라고 써 있습니다. 4. 3이라는 숫자가 뭐냐면 밑에 나와 있는 탄소, 탄소의 함량입니다. 탄소가 4. 3% 들어가게 되면 융점이 1147℃로 떨어지게 됩니다. 1538℃에서 1147℃, 거의 400℃ 가까이 융점이 떨어지게 됩니다. 온도가 낮게 되면 그만큼 쇳물을 얻기가 용이하겠죠. 그래서 탄소가 포함이 되면 쇳물을 얻는 온도를 낮추는 부수적인 효과도 생기게 됩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다음에 철을 얘기할 때 조금 더 자세히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가야지역인 부산

우리 지금 부산이 속한 지역이 옛 가야 지역입니다. 그래서 동의대학교 옛 주소가 가야동 산24 이렇게 돼있죠. 가야는 기원전 100년부터 기원후 560년대까지, 이 지역에 경남 경북지역에 이루는 지역에 있었던 부족국가입니다. 연방국가입니다. 그래서 가야의 철기문화가 대단히 발전했습니다. 그래서 가야의 문화를 가지고 우리 좀 철기문화에 대해서 설명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가야는 나중에 신라, 신라장군 이사부. 바로 독도 노래에 나오는 이사부에 멸망이 되어서 신라의 복속이 되게 되고요. 그리고 가야의 유민 중에서 굉장히 탁월한 인물이 바로 김유신 장군입니다. 그래서 김유신 장군의 아버지가 가야에서 넘어갔던 그런 유민이 되는 거죠. 그 아들이 삼국통일을 이룩하는 아주 주축이 되는 겁니다. 가야에는 일곱 개 가야가 있었다는 설도 있었지만 대체로 여섯 개의 가야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 부산이 속한 이쪽 지역에 있었던 것이 금관가야입니다. 금관가야 하면 시조가 바로 김수로입니다. 탤런트 김수로가 아니고요. 우리 김해에 가게 되면 김수로 왕릉이 있습니다. 한번 가보시면 좋을 겁니다. 김수로는 알에서 태어났다 이렇게 돼있죠. 그 여섯 개 알이 있었는데 그중에서 제일 먼저 나온 것이 김수로고, 그 아래 순서대로 나왔는데, 각각의 알에서 나온 사람들이 각 부족의 왕이 되었다고 해서 6개 연방체가 만들어지고,가야의 초반에는 금관가야가 거의 주도가 되는 주도국이 되고, 후반으로 가게 되면 대가야가 고령 지방을 위시했던 대가야가 주력 국가가 되게 됩니다. 가야 문명 중에서 가야는 옛날부터 철기로 굉장히 유명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삼국지 위지동이전> 이런데 보게 되면 철기문화가 되어있다고 볼 수 있는데, 여기 지금 마구를 철로 만든 겁니다. 사실 우리가 도구라고 얘기하지만 은밀한 의미에서, 물론 밥하고 이렇게 하는 칼이라는 것이 식칼도 될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을 죽이는 칼도 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무기를 만드는 도구가 바로 청동기, 철기가 되는 거고요. 이게 이제 아무래도 국가가 형성이 되고, 그다음에 땅을 차지하고, 또 재화를 차지하고 하다 보면 전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고,그렇게 되면 기마병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데 그 기마병을 만드는 것이 사람을 보호하는 갑옷, 오른편에 보이는 것이고요. 그다음 말을 기동성을 좋기 하기 위해서 말을 보호하기 이해서 말에도 쇠로 된 갑옷을 했던 거죠. 우리가 흔히 칭기즈칸 얘기를 합니다만, 몽고의 기병들은 갑옷을 안 입었다고 그러죠. 그래서 맨몸으로 아주 빠르게 달렸다고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과연 갑옷을 입게 되면 아무래도 쇠를 걸치게 되니까 활동성이 떨어지죠. 그래서 옛날의 유럽의 기사 같은 경우에는 밑에 떨어지게 되면 일어날 수가 없어요. 그래서 누워서 죽는 거죠. 과연 그런 갑옷을 걸치는 것이 더 좋은지, 그렇게 싸우는 게 더 좋은지 아니면 맨몸으로 빠르게 하는 것이 좋은지 그런 선택을 한번 했을 걸로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어쨌든 가급적이면 얇게 갑옷을 만들어서 기사들은 우리 가야의 무사들은 사용했던 걸로 되어있고, 그렇게 활용된 걸로 볼 수 있습니다.

가야의 토기

그 다음 가야의 토기들인데요, 이 토기는 뒤에 세라믹을 할 때 조금 더 자세히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실제 복천동 고분에 가게 되면 뒤에 복천동을 말씀드리겠습니다만, 갑옷을 이렇게 입힌 모습들이 돼있습니다. 데코레이션도 되어있고요, 그것을 실제로 입혔을 때 모습도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갑옷을 입으면 아무래도 외부로부터 오는 충격을 보호할 수는 있겠지만, 움직임도 둔하고 무겁게 되고, 이것을 아마 걸치려면 힘이 대단히 좋은 사람이었을 걸로 생각이 됩니다. 실제로 복천동 고분에 가게 되면 갑옷을 걸친 사람들을 볼 수 있고요. 또 가야의 금관도 복천동 고분에서 출토된 것을 볼 수가 있는데, 여기 지금 나와있는 금관들은 은밀한 의미에서 청동기에 금 도금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철이 대단히 가야에서 많이 나왔습니다만, 금은 아무래도 귀하니까 그렇게 많이 안 나왔던 걸로 판단이 되고 그래서 금 도금을 한 청동기 왕관을 가야의 왕들은 썼던 걸로 판단이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신라 경주에 가게 되면 굉장히 화려한 금동관 같은 것을 볼 수가 있는데, 그것은 통일신라 이후에 금세공 기술이 아주 최고의 기술로 이르면서 나왔던 것이고, 이것이 초기 금관의 형태다 이렇게 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가야를 얘기하면 제가 꼭 한번 언급을 하고 싶은 책이 있습니다. 그래서 <현의 노래>라는 김훈 선생이 쓰신 글입니다. 김훈 하면 꼭 봐야 되는 책이 <칼의 노래>입니다. <칼의 노래>는 충무공을 너무나 인간적으로 어떤 고뇌를 하고 사셨는지를 그린 아주 훌륭한 소설입니다. 김훈 선생의 글은 대단히 읽기가 편하고 속도가 빠릅니다. 그래서 김훈 선생의 문장을 여러분들 꼭 접하시길 바라고, <칼의 노래> 다음으로 나온 것이 <현의 노래>입니다. 현은 줄입니다. 줄. 그러니까 가야금을 의미를 했고, 가야금을 만든 분이 우륵이잖아요. 우륵이 대가야에 속한, 그곳에 살았는데 신라에 귀부을 하면서 가야금이라고 지어진 걸로 역사상으로 알려져 있는데, 현의 노래는 바로 우륵의 이야기를 그린 것이고, 여기에 조연으로 등장하는 사람이 야장입니다. 대장장이입니다. 그래서 국가가 흥망성쇠를 하면서 소재를 만드는 철을 만드는 대장장이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또 국가의 흥망성쇠라는 것이 무슨 의미를 가지는지를 김훈 선생의 글로 여러분 접하시게 되면 이 시대를 나름대로 잘 파악할 수 있을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합니다. 잘 알고 있는 겁니다, 동래역이라고 보이죠. 여기 지금 복천동에 해당됩니다. 동래문화회관도 있고요. 그래서 하늘에서 보게 되면 고분들이 속해져 있고, 여러분 동래역에서 내려서 얼마 안 걸어가면 그 주변에 아파트도 꽤 많아요. 그래서 복천동 가시게 되면 박물관도 있습니다. 그래서 거기 한번 보시면 가야 문화가 아주 잘 표현이 돼 있습니다. 물론 가야 컬렉션이 아주 잘 되어있는 곳에 속합니다. 그래서 실제로 무덤을 모형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부장품이라고 그러죠. 가야는 사람이 죽으면 같이 주변에 있었던 사람도 같이 묻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게 <현의 노래>에도 그런 얘기들이 나옵니다. 그래서 주변에 따랐던 사람들을 같이 묻게 되고, 사후의 세계가 지속적으로 연결된다고 봤기 때문에 써야 할 그릇, 칼이라든지 도구들도 함께 매장을 했던 거죠. 그런 모습을 여기 재현을 해놓은 것입니다. 복천동 고분 가시면 가야 문화를 잘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까이 있는 곳이니까 가야 문화의 진수를 보시기 위해서, BC 4~5세기 정도의 그때 복천동이 아주 가야 문화의 중심지였다고 알려져 있거든요. 한번 잘 볼 수 있는 박물관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이 됩니다.